"크리스마스에 웬 추리?" 1923년 신문에서 찾아낸 100년 전 성탄절

일제감점기 어느 교회 크리스마스행사
100년 전 크리스마스에도
트리가 있었을까요?
1923년 성탄축하식 상상 복원 이미지

100년 전 크리스마스,
사람들은 어떻게 보냈을까?

지금은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거리부터 달라집니다. 트리가 세워지고 불빛이 켜지고, 어디선가 캐럴이 들려옵니다.

그런데 100년 전에도 그랬을까요?

“잠깐, 1923년에도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어?”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을까?
사람들은 교회에 모여 무엇을 했을까?

이 궁금증을 따라가다 보니 아주 오래된 신문 한 장과 사진 한 장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진을 보고 있으면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사진은 낯설고 흐릿한데,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쩐지 익숙합니다.

먼저 사진부터 보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1923년 12월 신문에 실제로 실린 사진입니다.

1923년 성탄축하식 신문 원본 사진

지금은 사진이 너무 작고 거칠어서 한눈에 모든 것을 알아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무대 위에 사람들이 서 있고, 그 앞쪽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앞쪽에 모여 있는 아이들입니다.

이 사진이 실린 신문은 사진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진은 시내 모 교회에서 이십오일 밤
성탄축하식 후 여흥하는 광경」

지금 말로 하면
“서울 시내 어느 교회에서 25일 밤
성탄축하식이 끝난 뒤 함께 즐기는 모습”
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여흥’입니다.

여흥은 행사가 끝난 뒤 이어지는 놀이와 공연, 또는 함께 즐기는 시간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이날 사람들은 성탄축하식만 하고 돌아간 것이 아니라, 행사가 끝난 뒤에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 사진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진 옆에 실려 있던 기사입니다.

1923년 12월 27일 신문에 실린 「크리스마쓰 祝賀式」이라는 기사입니다.

지금부터는 설명을 덧붙이기보다, 당시 신문이 쓴 글을 먼저 그대로 읽어보겠습니다.

1923년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썼습니다

「크리스마쓰 祝賀式」

재작 이십오일은 예수성탄일이다. 세계 엇더한 나라를 물론하고 기독교가 드러간 나라에는 년년히 이날을 감사와 깃븜가운데서 지내이고, 더욱 예수교를 만히 밋는 구미각국에서는 일년 중에 제일가는 몇 칠로 삼아서 눈이 길로 차히고 물독이 어러 터지는 날도 따뜻한 사랑과 즐거운 웃음이 끈일 줄 모르는 날이다.

조선에서도 경향을 물론하고 각 교회에서 성탄 축하식을 거행하며 예수교인의 가정에는 찬란한 「크리스마쓰 추리」가 생기고 어린아이들은 어여쁜 장난감으로 밤 가는 줄을 모른다.

―― 사진은 시내 모 교회에서 이십오일 밤 성탄축하식 후 여흥하는 광경 ――

그럼 이걸 요즘 글로 바꿔보면?

지금 우리가 읽는 말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지난 25일은 예수님의 성탄일이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기독교가 전해진 나라에서는 해마다 이날을 감사와 기쁨 속에서 보냅니다.

특히 기독교를 많이 믿는 서양 여러 나라에서는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날 가운데 하나로 여겼습니다. 눈이 길에 쌓이고 물독이 얼어 터질 만큼 추운 날에도 따뜻한 사랑과 즐거운 웃음이 끊이지 않는 날이었습니다.

조선에서도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각 교회에서 성탄축하식을 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가정에는 찬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생겼고, 어린아이들은 예쁜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사진은 서울 시내 어느 교회에서 25일 밤 성탄축하식이 끝난 뒤 사람들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담은 것입니다.

그런데 잠깐만요.

신문에서 발견한 아주 재미있는 표현 “크리스마쓰 추리”

처음 보면 무슨 뜻인지 조금 헷갈립니다.

크리스마스에 웬 ‘추리’일까요?

추리소설의 추리도 아니고, 누군가의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풀었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부르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당시에는 ‘크리스마쓰 추리’라고 적었던 것입니다.

100년 전 신문에서 갑자기 익숙한 물건을 발견한 기분입니다.

그리고 아이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이 기사를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남는 부분입니다.

1923년 신문의 표현 “어린아이들은 어여쁜 장난감으로
밤 가는 줄을 모른다.”

말은 100년 전인데 장면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집에 트리가 생기고, 아이들에게는 예쁜 장난감이 생깁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것을 가지고 놀다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릅니다.

장난감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겠지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은 어쩌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 속으로 다시 들어가 봅니다

이제 원본 사진을 다시 한번 바라봅니다.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저 아이들은 1923년 12월 25일 밤, 교회에 모여 성탄축하식을 보고 있었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누군가 행사를 진행하고, 아이들은 앞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행사가 끝나면 ‘여흥’이 이어졌겠죠.

정확히 어떤 공연이 펼쳐졌는지는 이 사진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문에 남겨진 한 문장은 분명합니다.

그날 밤, 사람들은 함께 웃고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 사진을 만들어봤습니다

원본 사진은 오래된 신문 인쇄 때문에 많은 부분이 흐릿합니다. 그래서 원본에서 확인되는 사진의 구성과 기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 성탄축하식이 어떤 분위기였을지 상상해봤습니다.

1923년 성탄축하식 상상 복원 이미지
상상 복원이라는 점은 꼭 기억해주세요.
위 이미지는 1923년 사진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 아닙니다. 원본 사진에서 확인되는 구성과 신문 기사에 기록된 성탄축하식의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의 분위기를 상상해 시각적으로 재구성한 이미지입니다. 사진에 보이지 않는 공간과 장식, 인물의 모습 등은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100년 전 크리스마스와 지금의 크리스마스

1923년의 크리스마스를 지금과 비교하면 달라진 것이 정말 많습니다.

화려한 전구도 없었을 것이고, 휴대전화도 없었고, 거대한 쇼핑몰 트리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신문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 낯설지 않은 장면들이 나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집에 트리가 생기고,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교회에는 사람들이 모였고, 성탄축하식이 끝난 뒤에는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쩌면 크리스마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100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100년 전에도
누군가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렸습니다.

그때는 ‘크리스마쓰’라고 불렀고, 크리스마스트리는 ‘크리스마쓰 추리’라고 불렀습니다.

아이들은 ‘어여쁜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밤이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지금 우리가 크리스마스에 하는 일과 아주 조금 닮아 있지 않나요?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누군가를 기다리고, 함께 모이고, 아이들이 선물을 기대하고, 따뜻한 시간을 보내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올해 크리스마스트리를 바라볼 때는 반짝이는 불빛 너머로 100년 전 어느 겨울밤의 아이들도 한번 떠올려보면 좋겠습니다.

그 아이들도 아마 우리와 똑같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까요.

※ 1923년 12월 신문에 실린 「크리스마쓰 祝賀式」 기사와 사진을 바탕으로 구성했습니다.
※ 기사 원문의 옛 표기와 문장 흐름은 당시 표현을 살려 소개했습니다.
※ 상상 복원 이미지는 역사적 사진과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미지이며 실제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것은 아닙니다.